예전에 직장에 다니고 있는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나는 회사를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알바만 몇 년 조금 하다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회사 생활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정장을 입고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나보다 여유롭고 단정되어 보이는 오피스 걸에 대한 로망도 있었다. 친구와 만나 삼겹살에 소주를 기울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의 입에서 나오는 회사 생활 이야기는 내 상상과는 확실히 달랐다.
친구가 회사에 다니면서 친해진 직원이 자기한테는 엄청 잘해주고 친절하게 대했지만 다른 직원들한테는 자신의 뒷담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이 직원의 이중적인 모습을 고깝게 여긴 다른 직원이 내 친구에게 넌지시 알려주었고 내 친구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따로 말하자니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회사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더 안 좋은 소문이 퍼질까 무서웠다고 한다. 애초에 학교처럼 선생님이 있는 것도 아니라 따로 말씀드릴 곳도 없었다. 게다가 자기보다 직급도 높고 일도 잘하고 있어 윗선에서도 좋게 보고 있는 사람이라서 결국 한 달 후에 친구가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나에게 말했다.
이 이야기는 친구네 회사 이야기에만 국한되지는 않는 것 같다. 로메리고 주식회사를 읽으면서 많은 감정을 느꼈다. 회사에서 누군가를 비방하고, 그 사람의 인성이 아닌 본인의 이익을 따라 사람을 따르고 사람을 버리고… 마치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처럼 사람이 사람이 아닌 회사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품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물론 거기는 끊임없이 일을 한다는 의미의 기계고 지금은 감정이 없어져 버린 기계라는 느낌이지만 결국 비슷하지 않을까?
지금 한국 사회는 상처의 결과물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에서 아픔을 겪고, 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한국전쟁이라는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누는 상처가 생겨버렸다. 그 이후에는 광주 민주화 운동 등 민주주의를 이륙하기 위해 또 많은 피를 흘려야 했다. 이 상처들이 아직까지도 사회 곳곳에 남아 비가 오는 날이 되면 관절이 쑤시듯 우리 사회 곳곳에서 지끈거리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았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한국의 교육과정도 한몫을 한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부터 아이들에게 반 등수를 기준으로 뛰어난 아이, 모자란 아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중학교부터는 세밀하게 전교생 중에서 내가 몇 퍼센트에 위치하는지, 어떤 고등학교를 지원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고등학교부터는 소의 품질 등급을 매기듯이 아이들에게 1등급부터 9등급까지 등수를 매긴다. 한 명 차이로 등급이 나뉘며 아이들은 내 앞에 한 명만 없었으면 내가 더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사회화 과정 중 또래 아이들과 처음으로 만나는 시기인 학교에서부터 아이들은 서로 이해하고 같이 나아가는 것이 아닌 경쟁하는 법을 먼저 배운다. 이렇게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회사에 가서도 경쟁하고 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오히려 어린 시절보다 더 아는 게 많아졌기 때문에 교묘하게 남을 이용하고 깎아내리려 한다.
로메리고주식회사에 나오는 김 실장도 어쩌면 한국 사회의 피해자 일 수도 있다. 국어 영어 수학 등의 지식적인 부분은 제대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회사의 실장까지 올라갈 수 있었지만 인격적인 교육은 받지 못했기 때문에 악행을 저지른다. 로메리고주식회사 나오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인물들은 그 인물들의 잘못도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되도록 방치하고 그런 인물들을 길러낸 사회의 잘못도 있지 않을까.
책에 나오는 로메리고주식회사의 신기한 점은 그럼에도 회사는 계속 돌아간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당장에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지금 바로 한국의 모든 사람들의 인격을 재검사해서 미달인 사람들을 사회에서 제거할 수도 없다. 결국 현실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고 사람들은 지금껏 배운 대로 어제와 같이 오늘도 계속해서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살아왔고 배웠으니까.
그러나 나는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 친구는 지금 한 회사의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자신이 회사에서 일하는 것만큼 인간관계를 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기 때문에 회사 내의 팀원들을 더 각별히 챙긴다고 한다. 친구가 잘 챙겨주었기 때문에 친구네 팀원들도 더 힘낼 수 있었고 팀 자체가 회사 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비가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이 친구는 작은 호미질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 단단한 바위가 되었다.
책은 말이 없는 스승이라는 말이 있다. 친구처럼 직접 겪으면서 배울 수도 있지만 나는 책으로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로메리고주식회사를 읽고 나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려고 노력하게 되고,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된 나처럼 누군가도 이 책을 읽고 성인으로, 사회에서 성숙하게 행동한다는 것은 무엇일지 고민해봤으면 좋겠다.